한국의 무형문화재 - 만신 김금화

기사입력 2020.01.23 09:04 조회수 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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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화.jpg

(사진: 덕담 박승우)


김금화(1931 8 18~ 2019 2 23)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금화(金錦花)는 만신으로 45년을 살아온 무당이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당시 황해도 지방을 휘젓고 다니던 큰 무당이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간 그녀는 시집 구박을 견디지 못해 16세 되던 봄에 뛰쳐나온 후 외가로 들어가, 17세 되던 해 외할머니를 통해 내림굿을 받고 무당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당시에 외할머니와 함께 큰 무당으로 활동하던 세 무당 할머니들로부터 무당의 길을 배웠다.

 

이후 무속이 미신으로 천대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견디어낸 그녀는 1966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입상, 1981년 국풍81 등으로 유명해졌다. 1982년에는 미국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신들린 작두타기로 미국인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1985년 해서풍어제 기능을 인정받아 인간문화재 82-나호로 지정되었다.

2014년 그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가 영화 '만신'(박찬경 감독)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7년 '비단꽃 넘세' 자서전 발간,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김금화 무가집' 등도 펴냈다.

2005년 강화도 굿 교육당 금화당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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