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우리 땅 이야기기사 근심을 잊고 가는, 망우리(忘憂里)2020/11/25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망우(忘憂) 고개의 지명은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 개국 후 묘자리를 정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동구릉의 건원릉(健元陵) 터를 유택지로 정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 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주위의 산천기세를 둘러보고 오랜 동안의 근심을 잊게 되었다하여 망우리라 했다고 전헤진다. 망우리하면 공동묘지 고개라 알고 있지만 현재는 신흥주택가와 교육지구로 탈바꿈해 망우리공원으로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서울 둘레길 2코스'가 쉼과 문화가 있는 명소이다. 서울 둘레길2코스는 용마산과 아... 寬仁坊의 인(仁), 대사동(大寺洞)의 사(寺)자를 조합한 인사동(仁寺洞)2020/10/30 인사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종로2가)에서 관훈동 136번지(안국동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로 안국동 사거리에서 장교(長橋)를 건너 청계천으로 갈 수 있었다. 인사동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지역에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이 있었고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 이루어진 행정개혁 때는 대사동(大寺洞), 원동(園洞), 승동(承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있었다. 관인방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인사동이라는 동명이 붙여진 것이다... 춘천(春川)의 원래 지명은 ‘봄내’? 원래 이름은 ‘소머리’2020/09/23 춘천(春川)의 원래 지명은 ‘봄내’?, 봄내는 예로부터 내려온 순 우리말식 표기가 아닌 오늘날 기준으로 한자를 보고 역으로 뜻풀이를 한 것이다. 춘천의 정확한 원래 땅 이름은 ‘소머리’이다. 춘천의 우두산(牛頭山)을 소머리산, 쇠머리산, 솟을 모이, 솟을 뫼라고 부르는 이름의 뿌리에서 연유했다. 백두산을 머리산(頭嶽)이라고 불렀고 강화도 마니산을 머리산으로 부른 것도 동일하다. 이익의 ‘성호사설’ ‘천지문’(천문과 지리에 대해 정리)에 보면 춘천을 ‘금탕불발지형(金湯不拔之形, 공격하기 어렵고 무너뜨리기 어려운 상대를 지칭. 비슷한 의미로 철옹성)’으로 표시기했다. 지금의 제2 군단사령부가 있는 군사요충지로 과거에도... 낙산 아래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정주공간, 창신동(昌信洞)2020/09/09 종로구 흥인지문 앞 낙산 아래 동네 창신동.한양도성으로 진입하는 흥인지문과 인접해 있어 조선 전기부터 도성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형성되었다. 조선초(태조5년 1396년)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5부 52방 가운데 동부의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한 글자씩 따서 1914년부터 창신동이라 칭했고 1943년 구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경성부 동부출장소 관할에서 동대문구로 편입되었다가 1975년 10월에 동대문구에서 종로구로 편입되었다. 당시 종로구 지역은 한성부의 중심으로 한성부 ①중부의 서린방(瑞麟坊)•견평방(堅平坊)•경행방(慶幸坊)•징청방(澄淸坊)•수진방(壽進坊)•관인방(寬仁坊)•장통방(長通坊)•정선... 한자음도 똑 같은 인천 논현동(論峴洞)과 서울 논현동(論峴洞)2020/05/04 (사진:개인블로그)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쪽에 위치한 논현동(論峴洞)은 동쪽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서쪽으로는 연수구 동춘동과 연수동, 남쪽으로는 연수구 송도동, 북쪽으로는 남촌도림동에 접해 있다. 논현동의 옛 이름은 논고개 마을로 구한말까지 인천부 남촌면에 속해 있었다. 주변에 많은 자연부락이 있었지만 이중 논고개 마을과 모래 마을이 중심으로 1903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확정할 때 논현리 사리동(沙里洞)이 됐다가 1906년 논현동으로 바뀌었다. ‘이 마을에 있는 논들이 고개[峴] 위에 있다’고 해서 ‘논고개’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고개’는 한자 그대로의 뜻을 갖지만 ‘논(論)’은 한자의 소리만 빌... 1 2 3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