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쓰고 있는 수화 김환기화백

기사입력 2020.11.05 09:24 조회수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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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jpg

(김환기, 1913.4.3~1974.7.2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을 쓰고 있는 김환기화백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하여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표현한 한국의 대표적 현대화가이다. 김화기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수화(樹話),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는데 대학재학 시절에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신미술 운동에 참여하는 등 초창기 한국 추상미술운동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고 1956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3년간 서구미술을 체험했다. 1965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커미셔너로 출국하였다가 미국에 들렀다가 그대로 미국에 정착하여 사망할 때까지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경향을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초기의 수업시대는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 새로운 추상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광복 이후부터 파리로 건너가기까지의 시기는 달과 산과 구름과 학 등 한국적 소재의 발견으로 일관되었다. 미국에 건너가기까지는 이러한 주제가 더욱 요약되고 심화되어 항아리와 달을 닮은 형태가 화면을 채운다든지 하나의 긴 수평선으로 상징되는 강 등으로 압축된 작품이 나타난다. 미국으로 건너가 사망할 때까지 약 10년간의 시기는 그때까지와는 커다란 변화를 보여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어 추상공간의 무한대를 나타낸 그림을 그렸다.

 

오랜 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미감을 간직한 그의 화폭에는 자연의 생성진화에 담아낸 우주적인 시적 세계가 들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주조색인 청색은 넓이, 커다란 공간, '고요의 메아리'를 환기시키며 메마름이 없고 작가의 손에 의해 가꾸어져 그의 생명의 흔적이 담겨진 청색이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적은 다음의 글은 그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예술은 미학적철학적, 혹은 문학적 학설이 아니다. 예술은 하늘과 산 그리고 돌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품으로 론도, 산, 산월(山月), 야상곡(夜想曲),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 론도는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35호로 등록되기도 하였다. 2019년 11월 23일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 'Universe 5-IV-71#200'은 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화 132억 3600만원 (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한화 100억을 넘긴 작품이 되었다.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미술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대구미술관)
 
일본 동경 시대(1933-37)와 서울 시대(1937-56)
작가는 1930년대 초기 일본 유학시기에 입체파, 미래파 등 서구 전위 미술 경향을 진취적으로 시도했으며 여러 실험과정을 통해 전위적 화풍을 지속하였다.
197년부터 1956년까지 서울 시기의 작품들은 여러 문인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 깨닫게 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바다, 산, 달, 매화, 구름, 나무, 항아리 등의 자연과 전통을 근간으로 한 소재들을 화면의 중심 모티브로 하되, 한국의 고유한 서정의 세계를 밀도 있고, 풍요로운 색채로 구현하였다.
 
파리 시대(1956―59)와 서울 시대(1959-63)
김환기가 파리에 도착했을 당시 파리의 미술계는 엥포르멜 경향이나 추상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작가는 서울 시기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은 자연 소재와 색채를 어어 가고자 했으며 곡선이나 선에 대한 실험을 지속했다.
파리에서 작가는 그곳의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문화를 체득했지만, 고국을 떠나 있으면서 더욱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예술가로서 고유한 정신과 노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파리 시기에 주로 항아리, 영원 관념의 매개인 십장생, 매화 등의 소재들을 분할된 평면 속에 재배치하여 담아낸 추상 정물 작품들을 작업했고 두 번째 서울 시기의 작품들은 산, 달, 구름 등 한국의 자연 소재들을 모티프로 했지만 형태를 단순화하여 간결한 추상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19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면서 출품한 작품의 경향 또한 달을 주요 모티브로 푸른 색채가 주조를 이루는 두터운 질감의 반추상 작품들이었다. 자연풍경을 형상화한 서정적인 작품들을 통해 국제무대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던 예술 의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뉴욕시대(1963-74)
작가는 뉴욕에 정착하여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점화 양식의 추상 회화를 발전시켰다. 뉴욕시기의 초반, 1964년에서 1965년으로 넘어가면서 화면에 자연의 모티프는 사라지고 순수한 색면과 색점, 색선의 단순한 추상적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작가가 이전까지 진행했던 두터운 질감이 사라지고 물감을 얇게 펴 발라 번짐 효과를 이용한 제작 기법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케치, 과슈 작업, 십자구도의 유화, 종이나 신문지 유화 작품과 같이 다양한 매재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1970년 첫 점화가 나오기까지의 끊임없는 조형적 실험과 물성 연구의 회화적 방법론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했다.
1970년대의 전면점화는 유화 물감이라는 서구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한국화에서의 먹의 번짐을 연상시키는 자연스러운 번짐과 스밈, 농담의 조절, 겹침의 기법을 통해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자적인 조형양식이다. 대형 화면 위에 색점을 찍고, 그 주변을 네모로 둘러싸는 기본 단위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화면을 가득 채우고, 수많은 점 단위들이 무리를 이루거나 회전하면서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13                     한국에서 출생
1933                     니혼대학 예술과 미술부 입학, 도쿄
1934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 조직에 참여하여 후지다 쓰구하루, 도고 세이지에게 지도 받음
1935, 36                 ‘이과회’에서 수상, 도쿄
1936~38                  ‘신시대양화전’, ‘자유미술가협회’, ‘백만전’, ‘구실회’ 참여, 도쿄
1937                     제1회 개인전, 아마기화랑, 도쿄. 서울로 귀국
1946~4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 역임
1948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 조직
1952~55/59~63            홍익대학교 교수와 학장 역임
1956                     제5회 개인전, 동화화랑, 서울. 파리에 도착
1959                     서울로 귀국
1960                     유네스코 국제조형예술협회 한국본부 회장
1963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명예상 수상, 상파울로. 뉴욕에 도착
1964                     J.D. 록펠러Ⅲ 재단에서 수여하는 지원금 수혜, 뉴욕
1965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특별실에 초대되어 제18회 개인전, 상파울로
1970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
1974                     제25회 개인전, 루이지애나. 뉴욕에서 별세(향년 61세)

김환기1.jpg

영원한 노래 1957 Oil on canvas_162x130
 
‘영원한 노래’는 1957년 제작된 것으로 이 시기에는 항아리, 영원 관념의 매개인 십장생, 매화 등의 소재로 작업했다. 파리 시기 작가는 한국의 고유한 정서를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 작품은 하나의 화면에 다양한 십장생의 소재를 분할된 평면 속에 간결하게 재배치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작품의 색채는 화면 가득 푸른색의 경향을 볼 수 되는데 작가에게 푸른색은 한국의 자연 빛깔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고향의 하늘과 바다의 색채, 푸른 도자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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