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서울시의회 자리는 엄귀비 사당(덕안궁)

기사입력 2022.03.14 09:14 조회수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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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안궁2.jpg

세종로 광화문 서울시의회 건물을 가려고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 간다.
내 유년시절엔 지금처럼 의사당 앞으로 걸어 다니지 못하고 건너편으로(지금의 프레스센터 방향) 걸어 가곤했다.
지금은 남쪽으로 출입구가 변경 되었지만 당시는 도로에서 바로 출입문이 있었다.

 
이곳은 1935년 부민관으로 개관 하였다. 2,000석의 근대식 다목적 공연장 이었다.
경성 부민관을 지은 곳은 영친왕 생모 엄귀비의 신위를 모신(덕안궁) 자리였다.
 
해방 후 국회의사당 은 1975년 여의도로 이전하기 전까지 20년 넘게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했다.

덕안궁.jpg

덕안궁(사진의 원 안)
1911년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가 세상을 떠나자 그 신주를 모시기 위해 1913년에 덕수궁 내 영복당(永福堂)이 있던 터에 덕안궁을 지었다. 1929년에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모여 있는 후궁들의 제사궁 터로 신주를 옮기고 그 터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이왕직(李王職)에서 일반인에게 판매하였다. 궁정동의 제사궁은 덕안궁의 이설로 칠궁(七宮)을 이루게 되었다.

덕안궁1.jpg

부민관
부민관(府民館) 또는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은 일제 강점기 경성부 부립(府立)의 다목적 건물이다. 1934년 7월 공사를 시작하여 1935년 12월 10일 완공하였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위치에 세워졌으며 강당과 사교실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경성부에서도 손꼽히는 건물이었다. 대강당은 규모는 약 2,000석으로 대소집회, 연극, 강연회등을 치를 수 있었다. 광복이후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의회 의사당과 사무처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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