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愛國歌)에 대한 불편한 진실

기사입력 2020.02.19 10:34 조회수 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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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시간을 즈음해서 확성기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 손을 가슴에 얹는 그러한 의식(儀式)이 요즘에는 없어졌다. 가끔 야구경기장에 갈 때면 경기시작 전에 국민의례의 순서가 있고 모든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1분 남짓 한 동안에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따라 부른다.


애국가는 갑오개혁 이후로 나라사랑의 정신을 함양하는 노래로 탄생하는데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조가 많이 사용되었고 그 노랫말에 안익태 선생이 곡을 붙여 지금에 이른다. 그런데실제 작사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아쉽지만 지금도작사자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1955년 문교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각계의 전문가 13명에게 질의를 했더니 윤치호 11명 유보 2명의 결과가 나왔으나 '미확정' 상태로 남겨둔다. 물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개신교의 장로로서 개신교적인 색깔이 강한 이 노래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리고 윤치호선생이 가장 유력한 작사자로 여겨졌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지는 못한다.

윤치호.jpg

윤치호(사진: 위키백과)


이유는 여러 역사학자들의 반대가 예상외로 강했는데 바로 윤치호 선생의 친일 행적 때문이었다. 개신교단의 대부였고 초기 YMCA를 이끌었던 최고의 지식인이자 계몽사상가 그리고 윤보선 대통령의 5촌 당숙. 그런데 삼일운동 무용론 (無用論)을 주창했고 국민정신총동원령을 내린 조선연맹을 이끌었으며 개신교 예배 순서에 일본 천황을 위한 기도를 넣자고 주장했으며 1935년 이후는 조선의 젊은이들에 게 태평양전쟁에 나가 황군(皇軍)의 길을 걷도록 역설했던 그런 전력이 감춰 질 수 는 없었다.

 

다음으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선생. 그가 독일에서 극우 나치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는 여러 자료들이 밝혀졌지만 분명 안익태선생은 1930년대 1940년대 세계 적으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최고의 음악가였다. 그런데 1940년 일본의 괴뢰국이 만주에 세워지고 그 만주국 건립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만주환상곡이 연주되는데 즉, '만주 환타지아'. 그 곡의 작곡가로서 역시 친일행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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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익태재단 홈페이지 캡쳐)

 

1970년대 초반 애국가에 문제가 있다고 서울대음대 교수들의 개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박정희대통령과 개신교단의 결사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그 교수들 가운데 주동자는 사상범으로 퇴출되기도 한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한 주역은 바로 정일권 국무총리였는데 1940년대 만주국에서 독립군 소탕역할을 맡았던 간도특설대의 백선엽, 정일권, 박정희 등 후세에 최고의 권력을 나눠 가졌던 멤버중의 하나였다. 정일권은 안익태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다고 하며 이렇게 애국가는 태생적 문제와 반대를 겪으며 수 십 년간 존재하게 된다.

 

또 다른 반대편 의견들도 있다. 매우 실제적인 지적들인데 애국가의 가사에 친일적인 내용이 없으며 이 노랫말은 윤치호선생이 본격적인 친일성향을 보이기 그 이전부터 불리워진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젠 60년 이상 관행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해도 충분하다는 논리이다. 작곡부분도 만주환상곡은 일회적인 연주였고 한국환상곡이 조금 더 먼저 만들어졌기에 문제 될게 없다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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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애국가는 가장 한국적인 멜로디이며 특히 후렴부분은 화성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작곡이다라고 주장한다. 친일파의 작품을 모두 거부한다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문화예술은 속빈강정이 될 거라는 우려도 있다. 또한 정치적인 청산의 논쟁도구로 악용된다는 견해도 있는데 이 세상에 문제가 있다고 다 바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역시 주장한다.
 
애국가는 안익태선생 사망 후 부인로리타 안이 저작권을 상속받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신탁 관리해오다 2005애국가가 한국 국민의 가슴에 영원히 불리기를 소망하며 고인이 사랑했던 조국에 이 곡을 기증 합니다라는 기증서와 함께 한국 정부에 저작재산권을 기증한다.
 

애국가에 대한 불편한 진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홍주프로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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