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비타’,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기사입력 2020.08.10 07:44 조회수 4,095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에비타. 오늘은 한때 아르헨티나의 국모(國母)로 추앙받던 '에바 페론'의 별칭인 'EVITA'의 뮤지컬 이야기로서 주요 출연자는 '대통령:후안 페론' '영부인:에바 페론' '이야기꾼:체 게바라'이다. 참고로 Evita는 ‘Little Eva’의 아르헨티나식 줄임말이다.

195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담배연기 가득찬 어느 영화관. 갑자기 영화상영이 중단되고 '에바 페론'의 서거가 발표되는데 수많은 국민들은 슬퍼하고 그 모습은 어린시절 에바 페론의 부친장례식과 오버랩 되고 다시 그녀의 장례식 모습으로 이어진다.

근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신분상승의 신데렐라 스토리. 15세때 연예인의 꿈을 꾸며 고향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하지만 겨우 클럽댄서로 일하게 되는 그녀. 성공을 위해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을 그 수단으로 활용하고 결국 모델과 성우 그리고 배우를 거쳐 방송계로 진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쿠테타로 연이은 정국불안이 계속되었고 이때 '후안 페론'이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지만 그 상승세는 예측하지 못했던 전국적인 큰 지진으로 묻혀진다. 바로 그때 '후안페론'은 기금모금 이벤트에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데 거기서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히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순간순간들. 1920년대 봉건적인 체제를 유지했지만 세계 4대 경제 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미국 대공황의 영향으로 극심한 빈부격차와 노사갈등을 겪게 된다. 당시 군인출신 노동부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은 반정부활동으로 감옥에 가고 시위 노동자의 석방은 총체적인 난국을 풀어가는 열쇠였는데 이때 '에바 페론'의 라디오 연설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치범 후안 페론이 감옥에서 풀려나고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다. 연이은 희소식이 들려오는데 후안페론이 대통령 당선되고 곧이어 에바 페론은 26세에 영부인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대통령 영부인이란 지위를 이용해 파퓰리즘 정책의 선봉에 선다. 가난한 국민들을 위한 재단설립, 여성인권신장을 위한 사회운동, 유럽외교의 상징적 인물, 복지노동성 장관 취임 그리고 부통령으로 추대.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런 조롱이 언제나 따라다녔다. '거룩한 악녀(惡女)이자 천박한 성녀(聖女)'.
열정적으로 경제적 하위층과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영부인 에비타는 수차례 유산을 겪기도 하고 암세포가 점점 퍼지면서 공무수행 중 쓰러진다. 가상의 상상 속에서는 이야기꾼으로 등장하는 '체 게바라‘ (의사출신으로 제국주의 배척의 혁명가)와 왈츠를 추는데 마치 죽음을 암시하듯 지나건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마치 예언처럼 그녀의 자서전 ‘내삶의 이유’에서 나온 사건들이 하나둘씩 포개진다.

에비타.jpg(사진:malvern-theatres)

지난 수년간 세상 밖으로 밝혀지진 않게 꼭꼭 감춰놨지만 소녀시절의 성폭행과 그리고 삼류 창녀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을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자들은 잔인할 정도로 조롱한다. 병원에서 돌아온 그녀는 국민 앞에서 노래로 마지막 연설을 하는데 이 노래가 바로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난 이렇게 변화를 가져와야 했어요.
밑바닥 인생으로 나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요.
난 자유를 선택했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답니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지금까지의 힘든 나날 속에서도
우리들은 그 약속들을 지켜왔습니다~~
국민들의 추모열기 속에서 그녀는 3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작사가 ‘팀라이스’ ‘작곡가 엔드류 로이드 웨버’, 두 천재 음악가는 의기투합하여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고 이후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된다.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마돈나'가 낙점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20년동안 영화제작을 준비하면서 언제나 에바 페론 역의 1순위는 ‘메릴 스트립’ 이었다고 한다.
1947년에는 스페인의 철권 독재자 '프랑코'가 에바 페론에게 스페인 최고훈장인 '이사벨라 십자훈장'을 수여했는데 모든 각료와 언론이 반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젊은 미녀 에비타에게 반한 프랑코가 강력하게 추진하여 수여했다고도 한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엄청나게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부인들로 구성된 사교모임에서 회원 가입을 거부당해 한동안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교모임의 회장은 대통령영부인이 한다는 조항이 만들어 지고 그녀는 회장이 되지만 짧은 가방끈과 떳떳하지 못했던 그녀의 지난 인생은 늘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찬 디오르' 같은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었으며 그래서 옷과 구두 장신구 보석등을 가장 먼저 착용하는 호사를 누렸다고 한다.
미국이 개입한 군부 쿠테타에 의해'후안 페론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에바 페론이 사망하고 미국은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그녀의 시체를 이탈리아에 16년이나 숨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은 고향의 허름한 공동묘지로 돌아가게 된다.
70년전의 아르헨티나와 오늘의 대한민국. 단순하게 비교하기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와 더불어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한 여성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 ‘대한민국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의 논리전개는 가능할 것인가.

이홍주프로필2.jpg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저작권자ⓒ코리아인사이트 & www.koreainsight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0
이름
비밀번호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