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을 잊고 가는, 망우리(忘憂里)

기사입력 2020.11.25 07:54 조회수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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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망우(忘憂) 고개의 지명은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 개국 후 묘자리를 정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동구릉의 건원릉(健元陵) 터를 유택지로 정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 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주위의 산천기세를 둘러보고 오랜 동안의 근심을 잊게 되었다하여 망우리라 했다고 전헤진다.

망우리1.jpg

망우리하면 공동묘지 고개라 알고 있지만 현재는 신흥주택가와 교육지구로 탈바꿈해 망우리공원으로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서울 둘레길 2코스'가 쉼과 문화가 있는 명소이다. 서울 둘레길2코스는 용마산과 아차산까지 이어지는 걷기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살기 좋은 동네이다.
 
공동묘지터가 된 것은 1933년 미아리의 공동묘지가 포화상태가 될 것을 예상하고 경기도양주군 망우리 고개를(228만3000㎡, 약 70만평) 신규로 공동묘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3년까지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망우리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며 숲과 산책로를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었다.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이중섭(화가), 박인환(시인), 도산 안창호, 조봉암 등 유명 인사듫이 잠든 문화 탐방코스로 운영되고 있다.

망우리.jpg

 

망우리2.jpg

조선 태조가 개국한 뒤 사후에 묻힐 곳을 찾기 위해 개국공신 남재(南在)를 비롯한 다른 신하들과 명당을 찾던 중, 현재의 건원릉(健元陵) 부근에서 세 혈을 얻었다. 이곳은 이미 남재가 묏자리로 잡아놓은 지라 태조가 남재에게 다른 곳과 바꿀 것을 제의했다. 남재는 “왕릉으로 정한 곳에 어찌 제가 묻힐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불경일 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중죄가 되는 것이니 불가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태조는 “내가 잊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 줄 터이니 이것으로 증빙을 삼으라.” 하고 친히 불망기(不忘記)를 써 주었다는 내용이다. 그 밖의 변이형은 특별히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망우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역은 전국에 있다.
 
이 밖에도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과 양주군 매곡리의 망우리 마을 그리고 망우리포, 망우릿골, 망우정, 망우제 같은 명칭이 다양하게 있다. 망우라는 낱말이 들어간 지명은 묘나 정자와 관련이 있어 걱정을 잊고 쉬는 곳, 마음을 편안히 해 주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공동묘지가 있는 중랑구 망우동은 태조의 근심덜기와 함께 사후의 평안을 기리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지명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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