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음력 9월 9일 떠났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이다.
제비는 우리 주변에 흔한 새였다. 사람의 마을을 찾아와 한 지붕 가족처럼 지내던 친구는 도시에선 볼 수 없게 되었고 서울시에서는 보호종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제비집 투어
매년 봄이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처마마다 둥지를 틀어 검은 양복을 입고 손님을 가장 먼저 반겨주던 우리 친구 제비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까?
이에 대한 해명은 수천 년 전 인간과 제비의 잘못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제비는 천적을 피해 인간과 공생에 도전하였다.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는 한민족의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훌륭히 새끼들을 길러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처마가 있는 집을 짓지 않으며 제비가 하루살이, 잠자리를 사냥하는 먹이터가 되는 논이 줄어들어 제비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전기줄에 앉아 쉬는 것을 좋아 한다.
공존을 꿈꾸면 인간에게 당당히 다가와 수천 년을 같은 함께 살아온 제비는 인간의 변심 때문에 큰 시련을 겪고 있다.
벼농사를 짓는 시골집은 제비 번식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다른 새들은 둥지 재료로 이용하지 않는 진흙이 풍부하고 곧 태어날 새끼에게 먹일 다양한 곤충이 있기에 논은 제비의 번식에 필수 공간이 되어 주었다.
제비가 온다는 삼월삼짇날은 모내기를 하기 위해 논에 물대는 날과 거의 일치한다.
겨우내 바짝 말라 흙먼지가 날리던 논에 물이 들어오면 암컷은 진흙을 물고 와 둥지에 쌓고 점성이 강한 침과 섞어 다진다. 수컷은 사초과 풀을 물고 와 암컷이 진흙 작업을 해 놓은 둥지의 강도를 높인다. 집을 짓는 4~5일 동안 논두렁에서는 새끼 제비를 먹일 곤충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번식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제비에게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다른 새들이 번식 둥지 근처에 새끼들의 배설물을 두지 않는다. 모두 입으로 물어다 멀리 내다 버린다. 배설물은 뱀이나 쥐와 같은 천적이 둥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둥지 근처에다 아무렇지 않게 배설을 하는 어미, 둥지에서 엉덩이만 내밀어 용무를 해결하는 새끼들도 부전자전이다. 다른 새들에겐 이런 행동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불장난 같지만 제비의 게으른 배설 행위는 매우 자연스럽게 계속된다.
이런 지저분한 행위에도 집주인은 배설물 받침대까지 설치해 주며 제비를 보호해 준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비는 행운의 상징이며 모기와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천적들이 얼씬거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비는 너무 조용한 집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예전에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아무 집에나 둥지를 틀었겠지만 요즘 시골에는 노부부만 단둘이 사는 집이 많아져서인지 평범한 농가보다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마을회관, 기름집, 가게, 식당, 미용실 등에 둥지를 많이 튼다.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 제비
아무리 시골이라도 마을회관이 있는 중앙도로에 있는 집에 둥지를 틀고 이면도로나 골목길에 있는 집에는 둥지를 잘 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친 다리를 고쳐준 흥부가 제비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는 친숙함을 잘 나타내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네 조상들은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들은 위에서 마당에 물을 뿌려 집을 짓는 진흙을 마련해 주었으며 제비를 죽이면 집에 불이 난다고 믿었다.
모내기하기 전에 논두렁에 종이로 만든 제비를 모셔놓고 해충을 막는 굿을 하는 풍습도 있었으며 제비가 하늘을 낮게 날면 비가 올 것이며 높이 날면 하늘이 맑게 갠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했었다.
제비가 돌아올때 꽃을 피우는 제비꽃
결과적으로 잘못된 만남이 되어 버린 친구가 위험에 처해 있지만 제비 보호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아파트를 허물고 처마가 있는 집을 지을 수도 없고 직장을 그만두고 논농사를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잡식동물 ‘호모 사피엔스’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1회용품 안 쓰기, 손수건 사용하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재활용품 분리수거와 같은 “불편한 자신과의 약속” 한 가지씩 실천이 오랜 친구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생태학자 최한수
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자연인.
글쓰기, 야생화 탐사, 조류 탐사, 생태 사진 찍기와 오지 탐험이 취미.
생태문화콘텐츠연구회 회장. 환경부 전국자연환경조사 전문조사원, 청계천 조류탐사교실 강사, 경희대학교 이과대학 강사, 동덕여대 교양학부 강사,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등.
저서로는 ‘학교 가는 길에 만난 나무 이야기’, ‘숲이 희망이다.’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식물 백과’, 생태시집 ‘노루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