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승무’에서 유래한 ‘외씨버선길’

기사입력 2021.11.16 09:47 조회수 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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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11.jpg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중략)

청록파의 대표 시인, 조동탁(東卓)의 ‘승무’라는 시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지훈(芝薰)은 그의 아호이고 그의 이름은 동탁이다. 이 승무의 싯구 ‘외씨버선’을 모티브로 한 길이 있다.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경북 청송, 영양, 봉화, 강원도 영월 4개 군의 15개 코스. 240㎞에 이르는 긴 길로 2013년에 조성이 완료된 천혜의 코스이다. 경북 청송에서 시작해 영양과 봉화를 거쳐 강원도 영월에서 끝나는 이름만큼 예쁜 ‘외씨버선길’. ‘외씨’는 오이씨란 뜻이고 ‘보선’은 버선의 경상북도 방언으로 ‘오이씨처럼 갸름하고 맵시가 있는 버선’이란 뜻의 이 길은 인공적인 손길이 거의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의 원시림 속을 걷게 되어있다.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는 영양의 외씨버선길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한 대티골(영양) 숲길 등 일제시대 금강소나무를 실어 나르던 두메산골을 걷는 길이다외씨버선12.jpg

영양 외씨버선길은 총 5개 구간이 있는데 오늘 걸을 길은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일월산 자생화공원에서 시작해 우련전으로 이어지는 약 8.3km의 코스이다. 이 길과 함께 영양의 길과 그 길속의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일월산 자생화공원에서 우리의 역사적 아픔이 묻어있는 일제강점기의 광산을 둘러보고 반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의 뛰어난 경관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자연 치유의 길'과 이곳 영양 출신 오일도 시인과 조지훈 시인의 시향을 느끼면서 자연을 노래할 수 있는 길이다외씨버선6.jpg

◆일월산 치유숲길
일월면 용화리 대티골에서 시작해 옛 국도를 따라 우련전으로 이어지는 외씨 버선길 영양지역 1차 길이다. 용화리 천문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옛 국도를 따라 텃골, 깃대배기, 깨밭골을 지나 칠밭모기까지 이어진다. 그곳에서 외씨 버선길은 오른쪽으로 계속돼 영양터널 입구로 이어지고 우련전까지 계속되는 8.3㎞다.

오랜 세월 수탈과 훼손된 일월산 국도와 군사도로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치유와 자연의 길로 재탄생한 것.

이 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낙엽송림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다래덩굴`칡덩굴이 뻗어 오른 어두운 숲길에선 솔향도 나고 더덕향도 난다. 옛 국도에는 '영양 28'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인근 나무의자 쉼터가 있는 '진등'에는 빨간색과 연녹색의 우체통 2개가 서 있다. 희망우체통이다.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냈으며 빨간색 우체통에서 엽서를 꺼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연녹색 우체통에 넣으면, 주민들이 1년 뒤 엽서를 부쳐준다.외씨버선21.jpg
칠밭목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내려오면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소천면' 경계임을 알리는 옛 국도판을 만난다. 왼쪽은 일월산 정상 오르는 길, 오른쪽은 봉화 갈산리 우련전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련전'(雨蓮田)은 조선말 신유박해를 피해 들어와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집단생활을 했던 성지다. 이곳은 내년 초 완성될 봉화군 소천면과 영양군 수비면 경계지역을 따라 이어지는 구간이다.

◆일원산 자생화길
일원산 자생화공원 부지는 일제가 광물수탈을 위해 일월산에서 금, 은, 동, 아연 등을 채굴하여 제련하던 제련소가 있던 곳으로 폐광석 찌꺼기로 인해 땅과 계곡이 오염되어 있던 것을 영양군에서 야생화공원으로 조성했다. 앞쪽 산에 여러 개 난 채굴장이 아니면 그저 평범한 야생화공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64종 113,000본의 야생화가 공원을 빼곡히 수놓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자 쉼터다. 채굴장 위쪽으로 산책로가 나 있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야생화가 끝모를 바다처럼 펼쳐진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에 조지훈의 승무시비가 세워져 있다.DSC_1198.jpg

일월산과 그 주변 자락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봄,여름, 가을까지 볼 수 있다. 이 부지는 과거 1930년대부터 8.15해방때까지 일제가 광물 수탈을 위하여 일월산에서 금, 은, 동, 아연 등을 채굴하여 이곳에서 제련소를 운영한 후, 폐광석 찌꺼기를 방치하여 토양이 심하게 오염되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고 인근 계곡은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채로 30년간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영양군에서는 2001년도에 폐광지역 오염방지 사업을 실시하여 오염원을 완전 밀봉하여 매립한 후 객토를 실시하여 공원부지를 조성하고 각종편의 시설과 야생화를 식재하여 일월산과 더불어 자연과 휴식할 수 있는 전국 최대규모의 야생화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외씨버선1.jpg
5,475평의 부지위에 일월산과 주변에 자생하는 금낭화, 구절초, 원추리, 벌개미취 등 야생화 64종 112,000본을 식재하였으며 멸종위기에 처한 할미꽃, 하늘말나리 등 희귀 야생화도 감상할 수 있고 일월산과 같이 고산 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소나무, 느티, 화살나무 등 향토수종 조경수 11,000본을 식재하여 녹음이 우거진 공원으로 조성했으며 특히 공원내 100평 정도의 인공 연못과 수로에는 수련, 꽃창포, 붓꽃 등 습지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그 외 영양이 배출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시비석과 전망데크, 정자 등 각종 편의시설과 527평 규모의 주차장도 마련되어있다.

◆장계향 디미방길
장계향(1598~1680)은 조선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나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에서 타계한 정부인으로 한글 기록 최초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썼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책을 저술해 남긴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 일이었으나 후손을 위해 기록을 남긴 앞서가는 여성이었다.외씨버선10.jpg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한 두들마을은 뛰어난 조선 여인과 현대문학의 한 면을 기리게 한다.
숲길을 안내 받으며 걷다보면 눈부신 영양의 자연이 펼쳐지고 그 속에 반변천이 똬리를 틀고선바위의 전설이 반겨주는 길이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마을이란 뜻의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고택과 문화재가 모여있는 영양의 명소이다.외씨버선13.jpg
◆오일도 시인의 길
일제강점의 암울한 시대에서도 민족적 양심을 버리지 않았던 시인 오일도(1901∼1946). 오일도 시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잡지인 '시원'(詩苑)을 창간해 시를 통해 시대적 아픔을 노래하려 했던 숱한 문인들을 지원했다.

특히 시인 오일도는 자신의 작품활동보다는 지역 후배 문인들의 시집 출판과 잡지 '시원'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기여하는 등 '지역 문인들의 맏형'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성으로 감정을 절제하기보다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던 그의 시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길이 '외씨 버선길-오일도 시인의 길'로 조성됐다.

영양군 입암면 선바위관광단지를 출발해 반변천을 가로질러 놓인 '석문교'(石門橋)를 건너면 수십 척 층층 절벽 아래 오솔길이 시작된다. 영양산촌생활박물관과 감천리 학초정, 천연기념물 측백나무수림, 감천마을과 오일도 시인의 생가를 거쳐 감천마을 초입 구 국도와 강둑을 지나 영양전통시장까지 11.5㎞의 거리다.

이 길 초입에는 깎아지른 절벽과 울긋불긋 물들고 있는 단풍나무, 솔향 짙은 소나무 숲을 지나 박물관 마당으로 빠져나오면 이내 반변천 강둑길로 이어진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녘의 고즈넉함, 학초정`측백나무수림 등 문화재가 지닌 역사 속의 무게, 감천마을에서 불어오는 시인의 향기 등을 발로 걸으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외씨버선8.jpg
◆조지훈 문학의 길
'외씨 버선길'은 이어진다. 청송에서 출발한 이 길은 역사를 거슬러 오르고 지역을 건너 북쪽으로 이어진다. 결국에는 강원도 영월까지 계속된다. 오일도 시인의 길과 연결된 길 이름은 '조지훈 문학길'이다.

영양 전통시장과 시장 안에 설치돼 있는 '외씨 버선길 영양객주'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영양읍 삼지리와 삼지연꽃테마단지를 거쳐 노루목재와 상원3리를 지난다.

곡강팔경의 으뜸인 '척금대'를 좌측으로 멀찌감치 돌아서 금촌산길과 곡강교, 일월삼거리를 지나 이곡교와 영양향교를 스치면 조지훈 시인의 마을인 주실마을과 조지훈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13.7㎞다.

이 길의 특징은 영양지역이 자랑하는 천혜 자연경관에다 반변천과 어우러진 산`들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 걷노라면 강을 따라 흐르는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살랑이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솔향과 함께 길이 이어질수록 시인의 시향이 함께 배어난다.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과 그의 형 동진의 시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실마을은 예천 금당실과 함께 '반 서울'로 불리던 명당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해마다 지훈예술제가 열려 '시인의 숲'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주실마을 앞에 자리한 숲에는 대부분 100년이 넘은 거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며 조동탁 시인의 시비를 접할 수 있다. 이곳에서 몇 걸음만 보태면 조지훈 시인의 시비와 문학관으로 들어설 수 있다.

외씨버선길 중 '오일도 시인의 길'과 '조지훈 문학길'은 단순히 걷는 도보길 수준을 넘어 왜 영양을 ‘문향의 마을’이라고 부르는지, 그 시대 문인들은 당시 시대적 아픔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느끼며 걷는 사색의 길이다.

외씨버선길의 가장 큰 특징은 인공적인 손길이 거의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의 숲 속에 썩은 나무, 벌레, 이끼 등 도시에서라면 자칫 더럽고 혐오스럽게 느낄 수도 있는 것들이 울창한 숲을 가꾸기 위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탄성을 자아내는 신비의 길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구분없이 한 번은 걸어 보기를 권한다.

일반적으로 교통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중앙고속도로 풍기 IC를 나와 울진까지 연결되어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영양군 일월산 자생화공원으로 가는 길은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외씨버선길은 총 13개 코스로 이루어진 모두가 산소 같은 길이다. 그 중 영양지역의 길을 걷다 보면 영양을 왜 ‘유지 속의 섬’, ‘문향의 마을’이라고 부르는지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으로 사유하는 걸음을 해 보는 것도 좋다.외씨버선길 지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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