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始興), 서울? 경기도?

기사입력 2021.05.12 07:34 조회수 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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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주민들에게 ‘시흥(始興)’은 혼란스러운 지명이다.
서울 금천구 시흥일까, 경기도 시흥시일까?
서울을 말할 때는 시흥동, 경기도는 시흥시라고 해야 정확하게 구분이 된다.
한자명까지 똑같이 표기하는 헷갈리는 지명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래는 하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둘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흥이란 지명의 어원은 둘 다 고구려 때 지명인 '잉벌노(仍伐奴)현'이 기원이다.

'일어나(始) 흥해간다(興)'는 의미의 고어인 '잉벌노'라는 고구려 지명을 한자로 기록하면서 별칭처럼 불리던 지명이었다. 이때 시흥은 경기도 시흥시가 아닌 서울의 시흥동 일대를 의미했다. 조선시대까지도 시흥은 서울 금천구 일대만이 아니고 영등포구 일대까지 다 포함해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조선 정조 때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隆陵, 융릉, 경기도 화성)로 가는 길목에 시흥 관아가 있었는데 행궁으로 쓰였기 때문에 시흥이라 불리던 지역들을 모아 '시흥현'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일제는 부군면 통폐합 정책으로 의도적으로 서울을 축소시켰다. 이에 조선시대 시흥현을 인천, 안산 외곽지역까지의 광범위 한 시흥군을 신설해 만들었다. 당시엔 서울 금천구, 영등포구, 관악구, 동작구, 구로구를 비롯해 광명시와 안산, 과천까지 합쳐 시흥군으로 통폐합된 것이다.(1963년 1월 1일 경기도 시흥군 시흥리를 서울 영등포구 시흥동으로 명명, 서울특별시 편입)시흥시1.jpg

(사진:금천구청)


해방이 되면서 통폐합되었던 시흥군은 계속 분할되는데 시흥시는 인천, 부천, 광명, 안양, 안산시 등 5개 도시와 경계를 짓게 된 경기도의 시가 됐고 원래 관아가 있었던 시흥현의 역사를 간직한 금천구 시흥동은 작은 지역으로 남게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명의 원천은 서울 시흥동이 맞다. 금천구의 시흥대로는 그대로 남았으나 과거 1호선 석수역과 독산역 사이에 전철역인 시흥역은 2008년 금천구청역으로 바뀌었다.(금천이라는 명칭은 삼국시대에는 잉벌노현, 통일신라시대에는 곡양현, 고려시대에는 금주현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금천현이 되었고 정조 때 시흥현으로 명명된 유래에 기인한다)

정조는 수원에서 있는 현륭원에 전배하기 위해 1790년부터 1800년까지 11년 동안 12차례 능 행차를 했는데 시흥대로를 경유해 금천구 관내를 거쳐 갔다. 시흥대로 마장천다리(현 도림천)를 지나 문성골(현재의 문성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을 거쳐 수천 참발소 앞길(시흥고개)을 통과해 시흥현 관아에 머물렀다. 그 후 박산(현 박미)을 거쳐 염불교(현 안양유원지 입구)를 거쳐 지나갔다.

금천구 시흥동에 비해 시흥시는 인구 50만이 넘는 18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된 대도시로 성장하며 2013년을 시흥 100년이라고 기념한다.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100년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시흥시가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 시흥시의 입장이다.시흥시.jpg
(사진:시흥시청)

지금의 시흥시 북부(옛 소래읍)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동구, 미추홀구, 연수구, 남동구 일대와 함께 삼국시대에는 미추홀/매소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소성현이었다가 고려시대에 경원부 → 인주였고 조선시대에는 인천도호부가 되었다. 부천군 소래면이었다가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하면서 옛 부천군의 잔여지역 중 하나인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에 시흥군 소래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에 계수리의 일부와 옥길리의 일부가 부천시에 옥길리의 나머지 일부가 광명시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 남부의 군자면, 수암면과 함께 시흥시로 승격했다.(1989년 시흥시 승격을 앞두고 인천직할시와 부천시는 서로 시흥군 소래읍을 자기 관할로 넘겨달라고 내무부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시흥시 남부(옛 군자면, 수암면)는 지금의 안산시 일대와 함께 삼국시대에는 장항구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장구군이었다. 고려시대에 안산군으로 이름이 바뀐 이래로 안산군이라는 고을이 1913년까지 이어졌다. 1914년에 안산군과 과천군이 시흥군에 통폐합되어 시흥군 군자면, 수암면이 되었고, 군자면과 수암면의 각 일부(경기도 반월출장소 편입 지역)가 1986년에 안산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잔여지역은 1989년에 북부의 소래읍과 합하여 시흥시로 승격했다.

1995년 내무부 주도의 인천 추가 확장을 앞두고 시흥시도 인천 편입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당시 시흥시 의회의 거센 반발로 주민투표조차 회부하지 못하여 인천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참고 기사), 장상동, 장하동, 수암동 및 화정동 일부가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한편 옛 시흥군의 중심지인 금천구 시흥동을 비롯한 원 시흥군 지역이 광명시 일대를 제외하고는 일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서울특별시 확장 정책에 따라 서울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시흥군 지역은 수도권의 팽창으로 각자 시로 분리되어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원래 인천, 안산 땅이었던 오늘날 시흥시 지역이다.

지금의 시흥시 북부는 인천도호부 전반면, 황등천면, 신현면→부천군 소래면이었다가 1973년에 시흥군으로 편입된 곳이고, 시흥시 남부는 원래는 안산군의 일부였다가 1914년에 시흥군에 편입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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