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 동네 북촌의 대표 건축물, 백인제•윤보선 가옥

기사입력 2021.03.29 08:17 조회수 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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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제지도.jpg

재동, 계동, 가회동, 인사동으로 구성된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위치해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해 온 우리의 전통 거주 지역이다. 거대한 두 궁궐 사이에 밀접해 전통 한옥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6백 년 역사도시의 풍경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곳곳에 남아있는 한옥들은 이어진 처마선의 미학은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에 대한 사랑을 다시 꽃피울 수 있는 곳이다.
 
북촌 한옥들은 우리 전통한옥과 비교해 온전히 품세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한옥의 구성과 미적 감각은 현대에 맞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양반 동네로 알려진 북촌은 모두 조선 시대의 기와집으로서 상류층의 구조 형태를 간직하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원래 이 동네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큰 집 몇 채와 30여 호의 한옥밖에 없었으나 일제 말기와 6.25 수복 직후 지금의 상태로 늘어났다.
 
영화 ‘밀정’이 북촌 백인제 가옥에서 촬영되었다고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는 북촌에는 대표적인 두 곳이 있는데 윤보선 전 대통령 가옥과 백인제 가옥이다. 윤보선 가옥은 지금 후손이 직접 기거하고 있어 개방하고 있지 않지만 백인제 가옥은 서울시가 매입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1. 한국 건축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윤보선 가윤보선가옥1.jpg
(개방하지 않는 윤보선 생가 솟을대문)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과 가회동의 경계에 위치한 안국동 윤보선 가옥은 1870년대에 지어진 주택으로 해위(海葦) 윤보선 전대통령이 거주한 집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후손이 기거하는 생활공간이라 일반인에게 개방되지는 않고 있어 직접 관람은 불가능하다.

안국동윤보선가는 1978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명칭을 '안국동 공덕귀가(安國洞 孔德貴家)'로 정했으나 2000년 4월 10일 '안국동윤보선가(安國洞尹潽善家)'로 개칭했다. 이후 2002년 1월 29일에는 고택의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제438호로 격상되어 지정되었다.윤보선가옥2.jpg
산정채(사진 : www.culturecontent.com)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윤보선가는 고종(高宗)때인 1870년경에 민대감(閔大監)이 지은 집으로 안채, 안사랑채, 바깥사랑채(산정채), 대문채, 별당, 광채, 부속채 등을 포함한 민가로써는 최대 규모인 99칸의 대저택으로 건축되었다. 이후 고종이 민대감의 집을 매입하여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으며 영혜옹주(永惠翁主)와 혼인한 금릉위(錦陵尉) 박영효(朴泳孝, 1861-1939)에게 하사하여 머물게 하였다. 이후 한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1910년대에 윤보선 전대통령의 아버지인 윤치소(尹致昭, 1871~1944)선생이 매입하여 이후 4대째 윤씨 일가가 살고 있으며 현재는 윤보선 전대통령의 장남이 일가를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윤보선가옥.jpg
서양식 식당(사진: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가옥의 구조는 처음 지어진 모습과는 달리 윤치소공이 가옥을 매입한 이후 1960년대 초까지 개보수를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937~38년 사이 산정채와 안채의 가운데에 위치한 정원의 비정형 연못을 정형으로 개조하고 정원석을 제거하여 동양식 정원을 영국식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목조 한와지붕은 전통 건축으로 유지하고 세부장식과 생활가구 등은 중국이나 영국식을 겸비해 실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전통기법을 가미하여 새로운 의장으로 개선하였다. 각 건물의 앞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유행했던 서양식 차양이 달려있었으나 산정채를 제외하고는 차양을 지지했던 기둥의 주초만 남아있다.윤보선가옥3.jpg
‘서울의 봄‘시기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이 담화한 산정채(사진 : www.culturecontent.com)
 
윤보선가옥은 서양의 영향을 받은 넓은 정원과 실생활에 맞게 개조한 안채와 서양식 채양 등 한말 양식들이 공존하는 특색을 지녔다는 건축사적인 특색을 가지고 있다. 한국정치사적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정당, 한민당(한국민주당) 탄생의 산실이며 민주운동의 본부이자 피난처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고택이다.
2. 예약제로 전체를 공개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백인제가옥.jpg
영화 밀정의 장면과 실제 백인제 가옥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별당채가 있다.백인제가옥1.jpg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黑松)을 직접 가져와 지은 백인제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들을 갖고 있다.백인제가옥2.jpg
백인제가옥 천정

사랑채와 안채를 별동으로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이다(지금은 다다미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사랑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원에서는 당당한 사랑채를, 중정에서는 넉넉한 안채를, 그리고 후원에서는 아담한 별당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백인제 가옥은 우리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한 자리에 모인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백인제가옥3.jpg

백인제 가옥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다.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등을 거쳐 1944년 백인제 선생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현재 개방된 모습은 2009년 서울시에서 인수 후 문화재 개•보수 공사를 거쳐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체험 공간으로 조성해 2015.11.18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방한 것이다. 서울시가 매입하기 전까지는 백인제선생의 부인인 최경진여사가 윤보선 가옥처럼 직접 거주를 하다 작고한 후 그 후손들이 서울시에 기증형식으로 넘겨주었다고 한다.
 
현재 역사가옥박물관 개방한 백인제 가옥에는 조선의 전통 목가구, 당시 유행한 축음기 등 서양 문물과 수입 중국 가구 등이 전시된다. 또 마지막 거주자인 백 박사와 관련된 사진, 의학, 골동품 자료 30여 점도 전시되어 있다.백인제.jpg
당시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기념사진, 앞 즐 여성 옆에 분이 백인제선생이 평소 존경했던 춘원 이광수선생백인제1.jpg
백인제선생 혼례식
 
한국 현대의학의 개척자이자 국내 의술계의 1인자로 꼽혔던 백인제(白麟濟, 1898.1.28~?)박사는 평북 정주 태생으로 경성의전 입학 후 3년 동안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하지만 3•1운동에 참여했다가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퇴학당하고 출옥 후 4학년에 복학해 수석 졸업했으나 의사 면허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일제가 조선총독부의원에서 의사를 하면 면허를 주겠다고 해 2년을 근무한 후에야 면허를 취득한다. 그 뒤 총독부 추천으로 6개월 동안 독일 의학계를 시찰한 후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가 돌아오고 나서 서울 저동에 백외과의원(오늘날  인제대학교 백병원)을 개업했다. 그리고 1946년 12월 그가 경영하던 병원을 한국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 병원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다시 임용됐다.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부임해 외과의학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해방 후 한국 의료계를 이끌었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전쟁 중 피란을 하지 못해 납북돼 이후 소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의 연령 상 이미 작고했다고 보여진다.
 
백인제 가옥 역사가옥박물관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평일•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가이드 투어(소요시간 50분, 1일 4회)를 원하는 시민은 시공공예약시스템(http://yeyak.seoul.go.kr)에서 사전 신청하면 된다. 단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휴관한다.

백인제 가옥 연표
1913년 7월 3일 완공 후 한상룡 거주
1928년 6월 29일 한성은행 소유권 이전
1935년 1월 29일 최선익(언론인)으로 소유권 이전
1944년 9월 1일 백인제(백병원 설립자)로 소유권 이전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 지정
2009년 11월 30일 서울특별시로 소유권 이전
2015년 11월 18일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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