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궁중음식(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의 혼과 맥을 잇다, 황혜성장인

기사입력 2020.09.29 11:17 조회수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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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햬성.png

(사진:덕담 박승우)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혼을 되살려낸 황혜성선생.
평생을 바쳐 궁중음식의 전통과 맥을 이어온 장인이다.

 

황혜성(黃慧性 본관은 평해 1920.7.5~2006.12.14)선생은 1920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다.

 

황선생은 처음부터 궁중음식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충청도에서 유일한 여성고등교육기관이었던 공주고녀를 나온 후 일본으로 유학해 후쿠오카시 지쿠시 여자고등학교(筑紫高等女学校, 현재의 지쿠시 여학원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어머니의 배려로 교토여자전문학교(京都女子専門学校, 현재의 교토 여자 대학)의 가사과에서 일본 음식과 서구식 영양학을 공부했다.

 

5년간의 일본유학을 끝낸 후 귀국하여 2년간 대동고녀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서울의 숙명여전에서 가사과 전임강사 자리를 제의해 1941년 숙명여전에서 영양학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이때 숙명여전 학장이었던 오다(小田)씨의 제안으로 궁중음식을 처음 접하게 된다.

 

일제치하였지만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계비인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가 궁인들과 거주하고 있어 아직 궁중의 법도가 남아 있던 창덕궁 낙선재로 찾아가 윤씨가 가장 아꼈다는 주방상궁, 한희순상궁을 찾아가 1972년까지 30년간 궁중음식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다.

 

황햬성10.jpg1970년 황혜성(왼쪽 첫번째)과 한희순(왼쪽 두번째) 등 윤황후를 마지막까지 모신 궁인들(사진:재단법인 궁중음식문화재단)

 

한상궁은 고종에 이어 순종, 순종비 윤황후를 모신 조선과 대한제국의 마지막 주방상궁으로 임금이 평소에 드시던 수라상부터 잔치음식, 제사음식까지 모든 궁중음식 조리법을 섭렵한 분이었다.

 

황선생은 상궁마마님이라 부르며 궁중음식의 재료부터 꾸밈새, 간 맞춤, 관련 용어 등 전 과정을 수기로 공책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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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순 상궁의 제자, 황혜성에 관한 신문기사 (1968년 3월 5일)(사진:재단법인 궁중음식문화재단)

 

그런데 그 가르침이란 것이 체계적이지도, 글로 된 것이 아니라 그저 눈동냥으로 익히는 것이어서 고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한다. 당시는 대부분 상궁들의 기억을 통해서만 요리법이 전수되었고 일제의 식민지 사관으로 음식에 대한 생활사의 보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때인데 황선생은 이 때부터 왕실 음식의 전통을 이어 가기 위해 정형화, 규범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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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성 친필노트(사진: 재단법인 궁중음식문화재단)

 

황선생은 그 후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비법에만 만족하지 않고 장서각과 규장각 등을 돌아다니며 궁중음식에 관한 옛 기록들을 찾아내 손수 체계화시켜 간다. 그래서 탄생한 궁중요리 이론서 책이 1957년 발간된 ‘이조궁정요리통고’이다.

 

이조궁정요리통고는 구중궁궐 깊숙이 숨겨져 있던 궁중음식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한국 음식 문화역사에 큰 의미가 있었다. 책의 발간은 우리 요리가 학문의 한 분야로, 한국 음식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황선생은 생전에 "궁중음식은 한국 식문화의 정수"라는 말로 이 책의 의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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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궁정요리통고(사진: 재단법인 궁중음식문화재단)

 

1971년 드디어 궁중음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38호로 지정 받게 된다. 황선생이 1943년 처음 기록하기 시작한 지 근 30년간의 혼신의 노력을 한 결과이다. 궁중음식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궁중음식의 전승과 보존, 그리고 전수를 위해 황선생은 1971년 궁중음식연구원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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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중음식연구원(전경) (사진: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궁중음식연구원은 창립 25년을 맞아 1996년 처음 궁중음식을 전수받았던 낙선재와, 한상궁의 사저가 안동 별궁과 가까운 곳인 창덕궁 옆 종로구 원서동 한옥으로 이전해 궁중음식 전수 교육과 전시 등 활발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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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황후가 거처했던 창덕궁 낙선재에 복원된 조선왕조 수라상(2014년)(사진:재단법인 궁중음식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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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 기록된혜경궁 홍씨의 회갑상차림 재현모습 (2017년)(사진:재단법인 궁중음식문화재단}

 

황선생은 1972년 문화재관리국 식생할 분야 문화재 전문위원을 하며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후학 양성을 위해 교수로도 재직하며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연구해 궁중음식 문화에 대한 학문적 노력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미국, 일본, 프랑스, 필리핀, 대만 등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조선궁중음식을 전시하고 강습해 우리 음식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데도 노력한다. 황선생은 대중매체를 통한 한국 궁중요리 전도사로 친숙한 분이기도 하다.

 

“집념을 가지고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을 꾸준히 기록해 두어라”, “음식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라고 강조한 황혜성선생. 그의 손길에서 사라진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은 영원한 한국의 위대한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한상궁에서 황선생으로 계보를 이어가던 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문화는 안타깝게도
2006년 12월 14일 오후 12시30분 서울의료원에서 향년 86세로 선생이 작고하면서 막을 내린다.황선생은 사후를 대비, 궁중음식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자녀들을 같은 길로 이끌어 그 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장녀 한복려씨가 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둘째 한복선씨, 셋째 한복진씨가 전수자로 대를 잇고 있다. (‘지화자’라는 궁중음식 한정식 음식점 운영)

 

황혜성선생은 숙명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 명지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성균관대학교 가정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 1957년 스승인 한희순과 공동으로 저작한 ‘이조궁정요리통고’를 시작으로 10권의 궁중음식과 전통음식 전문서적과 다수의 논문을 남겼다.

 

저술
‘이조궁정요리통고 (李朝宮廷料理通考)’ (1957년)
‘한국요리백과사전’’한국의 미각’ (1976년)
‘한국의 요리’ (1982년)
‘한국음식’ ‘전통의 맛’ (1985년)
‘한국의 식(韓國의 食)’ (1987년)
‘한국의 전통 음식’ (1989)
‘조선왕조 궁중 음식’ (1993)
‘한국음식 대관-6권 궁중의 식생활’ (1997년)
‘우리 음식 백 가지’( 1998년) 등

 

상훈
대한민국 교육훈장 목련장 (1985년)
문화훈장 보관장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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