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밤) 秋夕, 제례(祭禮)가 아닌 차례(茶禮)로...

기사입력 2020.09.27 07:48 조회수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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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추석 秋夕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가위 둥근 달에까지 전염되어 올해 달빛은 왠지 나이 드신 부모님의 병색이 완연한 낯빛처럼 안쓰럽고 안타까울 것만 같다.   

 
추석을 문자 그대로 풀면 '가을 저녁(밤)'인데 참으로 운치가 느껴지는 말이다. 한가위 밝은 달이 휘영청 뜨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명절로 삼아 기념을 했을까? 다들 저녁밥 차려 먹고 밖으로 나왔을 것이고 한 해 농사를 끝냈으니 한시름 놓게 된 마음은 꽉 찬 달만큼이나 여유와 안도감으로 차고도 넘쳤을 것이다. 농사를 혼자서 지은 게 아닐 터이니 모내기부터 김매기를 거쳐 추수까지 함께 더불어 작업을 했던 마을 사람들은 기쁨을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동료들이었을 것이다.
 
힘든 일을 같이해 본 사람들은 알게 된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는지를…. 하늘엔 밝은 달이 떠 있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돌며 술을 나눠 마시고, 음식을 같이 나누고,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아낌없이 한데 모았을 것이다.
 
추석은 그래서 진정한 대동단결의 한마당이다. 생산 시스템이 협업을 기초로 하는 농업구조에서 이러한 축제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개인들을 결속시켜 다시 생산성 확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었을 것이다. 기계 문명의 산업화를 거쳐 디지털이 주도하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영토 삼아 랜선을 통해 타인과의 제휴와 협력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점점 고립되며 고독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추석에는 또한 차례(茶禮)를 지낸다. 조상신을 받드는 제례(祭禮)와는 다른 성격의 의식(儀式)이다. 문자에서도 드러나듯이 원래 온갖 음식들 다 상에 올려 거창하게 준비하는 의식이 아니라 차 한잔 따르고 부담 없이 고인을 추념하거나 불가에서처럼 앞에 앉아 마주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절차가 니었을까? 집 안에 위패라도 있고 사당이라도 갖춘 집이라면 시시때때로 차를 올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처럼 간단히 고개 숙여 선조들의 정신과 업적을 복기하며 그 뜻을 새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서민들은 비싼 차를 마련할 돈이 없어서 숭늉 한 그릇 혹은 조촐한 박주(薄酒) 한 사발 올려놓고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서 차 한잔 올려놓고 죽은 자에게든 산 자에게든 예를 갖췄다는 것이고 그렇게 한 까닭은 배우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물었을 것이다. 찻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호호 불어가며 또렷한 시야를 확보하고, 찻그릇에서 배어 나오는 다향(茶香)을 음미하며 인생의 향기를 지니길 소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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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는 그래서 깨달음의 예식이다. 후대로 넘어오면서 사대부 집안이 가문의 위엄을 자랑하기 위해 산해진미를 갖추고 으스대기 위한 향연으로 본질이 바뀌게 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양반을 동경하던 서민들이 빚을 내서라도 따라 하겠다고 가랑이 찢어지는 줄 모르고 허례허식에 빠지고 말았다면, 향기로운 차가 그 맛을 잃고 변질한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를 지나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들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 주변에는 명절인데도 대동단결할 동료가 없다. 농사를 지을 때 가장 최소한의 노동 단위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집단이었던 가족마저도 해체되고 말았다. 이제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7.2%(520만 3,000가구/1,956만 가구)를 차지하며 1위를 차지하면서 이제는 가족도 곁에 없는 시대이다.
 
또한 따뜻한 차 한잔 앞에 두고 지혜를 구하기는커녕 바쁜 아침 출근길에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졸린 눈과 지친 몸을 추스르며 허겁지겁 어디론가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달려가기에 바쁜 시대이다.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자기를 돌아보며 성찰할 시간도 없이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밀려오는 짜증과 졸음에 고함치지 않는 게 다행인 시절인데, 올해는 그마저도 막히고야 말았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하늘에 걸린 달은 어떻게 보면 참 공허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컴퓨터 바탕에 깔린 스크린 세이버의 화면처럼 생명력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귀뚜라미 소리도 안 들리고 현실보다 더 화려해 보이지만 정감은 하나도 안 느껴지는 그런 가을밤의 풍경이다. 명절은 뜻깊은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답답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기념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일은 집 앞 공원에라도 나가 좀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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