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Make your choice!

기사입력 2020.07.17 23:43 조회수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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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장이 죽었다. 자연사가 아닌 급작스러운 자살 뉴스에 시민들은 혼란과 당혹감에 빠지고 말았다. 수년 동안 지속해서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한 피해자가 있었기에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망자를 두둔하려는 측과 비난하려는 측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개인의 죽음 앞에서 그의 정치적 과업에 대한 평가와 애도를 표하는 방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식으로 입장표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여권의 대선주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를 후보로서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편은 아니다.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2년 전인 지난 지방 선거에서 그에게 비록 한 표를 행사했지만, 그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로 그가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길게 보자면 지난 2016년 겨울, 적폐 청산을 위한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길거리 연설을 하는 그를 직접 지켜본 적이 있었다. 당시 대중 연설에는 능하지 못해 보이는 그의 모습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 안쓰러운 느낌마저 받았다. 그가 서울 시장의 자리에서 단호하게 시민의 편에 서서 광장을 열어주고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을 개방해 준 덕분에 기본적인 호감과 감사를 지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시민운동 1세대'로 시민 단체의 전성시대를 주도하며 이 땅의 풀뿌리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나, '권인숙 성고문 사건'을 비롯해 인권(특히 여성 인권)을 수호하는 인권 변호사의 면모들은 그저 말로만 전해들은 이야기라서 피부에 와서 닿는 감흥이 나에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고인이 위선적인 모습으로 피해 여성을 괴롭히며 가해를 가했다는 주장에도 선뜻 허탈감이나 배신감에 치를 떨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은 이제 막 고소 접수가 되었고 향후 법정 공방을 통해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위가 가려질 것이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그 이후로 보류하며 지켜보고 싶을 따름이다. 굳이 사법절차가 아니더라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이후 어떤 형태로든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행위들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세간의 설왕설래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안의 심정을 바탕으로 조촐하게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 되는 일인데 왜 이리 마음 한편이 찜찜하고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건 바로 세간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세 치 혀가 칼날과도 같은 비수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 누군가의 가슴에 꽂히는 일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극 영화 등에 보면 전쟁터에서 양국이 대치하며 진을 펴고 있다가 화살이며 화염 포며 총을 난사하며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시대가 바뀌면서 전쟁터는 이제 온라인으로 장소가 바뀌었고 그곳에서 원색적인 비난과 협박과 근거 없는 흑색선전과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냥 온라인 게임처럼 킬링타임용으로 즐기다가 로그아웃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마치 실제로 길거리에서 치고받는 폭력 행위처럼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받는다.
그 꼴이 보기 싫다고 하여 외면하면 그만일 텐데 사람들과 더불어 숨 쉬며 살아가는 세상이라 그럴 수도 없고 이제 더는 '정.알.못'이나 '정치 혐오론자'로 살지는 않기로 결심했기에 그마저도 길이 막혔다. 누구도 내게 견해를 밝히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음성이 '그래도 뭔가 네 의견을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압박을 가하는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 음성을 번역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명령과도 같은 말이다.
"Make your choice!" (선택을 하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 유명한 대사는 헐리웃 영화 등에서 악당들이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갖고 뭍으로 나가고 싶다는 인어공주에게 바다의 악녀 '우르줄라' Ursula가 목소리를 담보로 계약을 하자며 밀어붙였던 말이고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희대의 악당 조커가 시민이 탄 배와 죄수들이 탄 배에 각각 폭탄을 설치하고 상대방의 배를 먼저 폭파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라고 협박을 하며 강요했던 전략이기도 했다. 멀리 보자면, 예수라는 사내가 광야에서 40일 동안의 금식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신의 소명을 인식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탄이 찾아와 그의 귓속에 속삭였던 말도 결국은 '(나에게 무릎을 꿇고 세상의 권세를 얻을지 말지를) 선택하라!'였다.
필자는 최근에 지방 출장 공연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음악 밴드의 리더로부터 아주 기묘한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을 수 있었다. 시골 어느 마을에 노인대학 졸업식이 있었고 인구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일 년 중 가장 성대한(?) 졸업식 행사가 기획되어 그 밴드는 초청 공연을 의뢰받아 새벽부터 세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내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행사 당일 아침에 노인대학 수료생 중 한 분이셨던 할머니께서 집 앞 노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바람에 마음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자연 사고사인지 타살인지 밝히려는 경찰의 탐문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마을 회관에 모여 계시던 노인들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수군수군하며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말소리가 점점 커지고 다들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지게 되면서 갑자기 어느 한 분께서 기가 막힌 멘트를 날리시고 말았다. "아니 그 할망구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오늘 뒈지고 말았데?" 그 말을 듣고 있던 밴드의 리더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서 그저 헛기침만 하고 말았다면서 그때의 난감한 심정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결국 마을 이장님께서 멀리서 손님을 부른 마당에 행사를 취소할 수는 없으니 당일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다음 날 아침에 상가에 문상하러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서 밴드는 행사비를 받고 귀경했다는 말과 함께.
"저는 그분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이번 행사가 취소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데 그때에는 거기 모이신 분 중에 어느 한 분도 확실하게 살아계실 거란 보장이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분들은 그날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고 아마 다음날엔 상갓집에 가셔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통해하셨을 게 틀림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흑백 논리로 무장하고 적인지 아군인지 태도를 분명하게 밝히기 어려운 일도 벌어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시장의 자리에서 돌연 불의의 객이 된 고인에게 어떤 자세로 애도를 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는 차라리 어느 한 편에 서서 애도의 행렬에 참여하는 대신에 애도하는 일을 멈추고 그저 그 행렬의 끝에 어떤 묘지가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 무덤의 묘비명에 어떤 말들이 새겨지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며 그에 맞춰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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