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백중놀이 명인, 하보경(1906.8.24~1997.12.2)

기사입력 2020.06.01 08:49 조회수 2,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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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덕담 박승우)


밀양 백중놀이 중 북춤, 양반춤, 범부춤의 1인자인 하보경(河寶鏡)옹은 이동안, 박홍도 옹과 함께 현역 최고령 전통 예인 중 한 사람이었다.


경남 밀양에서 나고 자라며 하옹은 어린시절 큰북 치는 아버지를 보며 혼자 악기, 춤을 연습하곤 했다. 걸립패였던 아버지의 말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밀양백중놀이의 보본계(報本契)를 조직하여 경상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한다. 그렇게 닦은 그의 북장단과 '휘쟁이춤'은 가히 일품이다.

경남 밀양 출신. 라는 친목단체인 농악단원이었던 부모 하성옥(河聖玉)•이삼선의 사이에서 태어나, 는 일에 열중하다가 20세 때 보본계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걸립농악단의 모갑(某甲)이면서 큰북을 치기 시작하여 가락과 춤동작을 나름대로 연구하여 독특한 맛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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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화면 캡쳐)

40세인 1946년에 정한목을 대표로 하여 권재업(權再業)•김상용(金相容)•정일성 등 밀양민속놀이 연회에 뜻을 모은 오삼(五三)친목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그 뒤 놀이 체계의 확립을 위해서 따로 모여 김덕조를 회장으로 ‘국악협회’를 조직하였다가 1967년 ‘민속보존협회’로 명칭을 바꾸어 본래의 취지를 살리며 민속놀이를 보존하고 조직적으로 연희하였다. 1980년 밀양백중놀이를 정립하여 대외적인 활동이 활발히 펼치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 68호로 지정되었다.

1983년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스스로 창제해 낸 한국 전통의 양반춤을 넘겨 받을 사람이 적어 걱정이 많은 '조선한량'이었다. 현재 그의 대를 잇는 김상용•권재업•조병환(趙炳煥) 등이 있고 이수자인 박동영(朴東英)과 손자인 하용부(河龍富)가 있다.

<수상>
1980년•1981년•1982년 민속경연대회 경남 예선에서 최우수상 수상.
1980년 제주도 민속경연대회 국무총리상.
1981년 인천 경연대회 문화공보부장관상 수상..

<공연>
미국 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 일본 동경 순회 공연.
1988년 올림픽 문화예술축제 ‘노스토이(Nostoi)’ 천상의 신 배역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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