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저:담양군청)
전라남도 담양의 관방제(官防堤,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에 있는 옛 제방. 조선 정조 18년, 1794년에 축조) 아래 하천가에는 2일과 7일로 끝나는 날이면 우리나라 유일의 죽세공품 시장이 열린다. 담양의 죽세공품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품질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담양이 대나무의 고장이 된 것은 대가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그 시기는 약 400여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1760년에 펴낸 ‘여지도서’(1757년∼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 지방지, 읍지. 방리•도로•부세에 관한 제 조항 및 각 읍 읍지의 첫머리에 수록된 채색지도)에도 담양의 부채와 대바구니가 서울에 공물로 바쳐진 것으로 나와 있어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삿갓이 하루에 3만개 이상 거래되어 담양의 죽세공품시장을 '삿갓머리점'으로 부르기도 했고 윗장터, 소쿠리전, 죽물전에서 죽물시장으로 불려왔다. 부채나 참빗도 많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예전 번성기 때는 시장에서 사람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붐비었다고 한다.
(사진: 덕담 박승우)
1990년대 이후 국내경제가 선진국 대열 속으로 진입함과 동시에 죽세공예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값싼 플라스틱 제품으로 수요가 줄어 현재는 죽제품을 거래하는 시장 대신 한국대나무박물관과 읍내 몇몇 상설판매장만이 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죽세공품으로는 소쿠리, 바구니, 키, 채반, 죽부인 등은 물론이고 도시락, 바둑판, 의자, 침대, 자동차 시트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죽세공품은 대자리를 제외한 바구니, 채반 등은 푸른빛이 도는 대의 바깥부분 즉 외죽으로 만든 것이 좋으며 팽팽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밖에 껍질의 색깔이 전체적으로 비슷하고 마디가 일정한 것이 좋다. 죽제품은 습기가 없는 곳에 보관하고 마른 걸레로 자주 닦아주어야 오래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