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간 문화재 - 승무/살풀이 이매방, 이애주

기사입력 2020.01.10 17:21 조회수 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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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예를 발휘하기 위해 생전에 기울인 노력과 그들이 이룬 예술적인 성취는 전 사회가 지닌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된다. 이러한 다양한 무형의 문화유산 가운데 민족문화의 노른자위가 되는 소중한 것들을 선별·지정하여 그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것이 무형문화재이다.


정부는 1997년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공예,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103종목의 중요무형문화재와 180명의 보유자를 지정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들이 해마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깝게도 전승이 끊겨 그 살아 있는 기예를 다시는 볼 수 없어지게 되는 일도 많다.


여기서는 국가에 의해 지정된 인간문화재 중에서,명인에서는 음악· 무용· 연극· 놀이와 의식, 무예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예인들을, 장인에서는 입사장· 염색장 등 우리의 물건을 만들어 온 공예의 달인들을 소개한다.


승무/살풀이

이매방

이매방.jpg

(사진: 덕담 박승우)


이매방(李梅芳, 1926 5 5일생)옹은 전남 목포의 전통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할아버지 이대조씨는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 명고수였다. 그는 목포 권번에서 할아버지에게서 검무, 승무, 법무를 차례로 학습해 갔다. 판소리도 겸하려 했으나 상성이 터지질 않아 할아버지는 그에게 "평생 춤만 춰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 후 7 ~8년간 목포 권번에 있으면서 어린 동기들을 가르치고 광주 권번을 오가며 박여구 선생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 선생에게선 검무를 각각 익혔다.


그렇게 익힌 그의 승무는 6대째 계보를 이룬다. 목포공고 졸업 후 임방울 단체서 승무를 추기도 하고 23세 때는 군산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지금까지 이어 내려져 오고 있다. 1987년 인간문화재 제27(승무), 그리고 1990년에는 제97(살풀이춤)로 지정되었다.


이애주

이애주.jpg 

(사진: 덕담 박승우)

이애주(李愛珠, 1947 10 17일생)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치원 때부터 무용에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 그는 초등학교 입학 후 곧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무용을 담당하고 있던 김보남에게 맡겨졌다.이때 춤동작의 기본인 승무는 물론 궁중정재와 춘앵무, 검무까지 익히게 된다. 이후 서울대 체육교육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문리대 국문과에 학사 편입하여 다시 공부하며 전통 민속춤에 대한 이론의 바탕을 쌓게 된다.

1969년 한영숙(1920~1989)을 만나 승무 예능보유자인 그녀에게 완판 승무를 익히게 되면서 이애주의 춤판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1970년대 들어 그는 다시 다섯 분의 스승을 만나 춤사위를 살찌우게 되며 1974 '이애주 개인 무용 발표회' 이후 수많은 발표회와 해외 공연을 해오고 있다. 현재 승무의 악보화를 위한 채보작업도 구상중인 그는 1996 12월 승무/살풀이춤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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