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여성복식: 한국 옛 여인들의 옷 차림

기사입력 2018.10.11 16:02 조회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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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소매 배래선의 완만한 흐름과 하얀 동정의 정결성, 섶 코의 곡선, 옷고름의 선 등 한국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전해주는 이 한복이야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긍지를 반영해온 독창적인 양식의 하나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옷의 기본형은 여자는 치마와 저고리, 남자는 바지와 저고리이다. 이 기본형의 한복은 최근 우리의 노년층에서 즐겨 입는 일상복으로서 여기에 덧붙여 속옷으로는 속저고리, 속치마, 고쟁이와 함께 버선을 든다. 

한복을 용도별로 보면 평상시에 입는 일상복, 혼례 등 통과의례시 예를 갖추기 위해 입는 의례복, 또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특수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외에 남성의 웃옷으로서 곧은 깃을 단 도포가 있다. 신분과 지위 표시가 명확한 관복인 경우는 둥근 깃을 단 웃옷에 빛깔과 장식으로 구분했다. 조선시대는 삼국 시대 이래의 복식 문화를 꽃피워 왕복, 왕비복, 백관복, 선비복, 서민복, 관혼상제복 등이 제정돼 한복 양식이 한층 높은 수준으로 완성되었다.

옷감으로는 삼베나 무명과 같은 식물성 섬유를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했으나, 귀한 옷감으로 명주나 비단도 썼다. 또한 소박하고 검소한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고도 불리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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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의 구성은 몸체를 이루고 있는 몸판, 깃, 여밈 부분의 섶, 팔 부분의 소매통 등으로 대별된다. 이 중에서 가장 변화의 폭이 심한 곳은 저고리 길이와 도련, 소매의 형태를 들 수 있다.

섶은 저고리의 좌우에 각각 달리는데 기능적으로 양쪽의 앞을 여미는 여분이 되며, 미적으로도 변화의 선으로 형태미를 부여할 수 있다. 깃은 앞몸판에서 뒷몸판까지 연결되어 목둘레를 장식하며 한국 복식의 형태를 인식할 수 있는 특징 중이 하나이다. 옷고름은 기능적으로 의복을 정돈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나 후대에 갈수록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옷고름은 점차 길어지면서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동정은 의복의 관리면에서 세탁하기에 편리한 방법으로 이용된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로 저고리의 단정함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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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는 저고리의 아래에 입는 여성의 하의로 형태는 치마의 몸체와 허리띠, 끈으로 간단하게 구성돼 있다.

치마의 폭은 평면의 천을 이용하여 그대로 쓰지만 상부에 주름을 잘게 잡아 허리띠의 속으로 집어넣는다. 입을 때는 앞에서 둘러 입고 뒤에서 한 쪽으로 여며지게 하여 끈으로 묶으며 치마의 폭은 그대로 풍성하게 둥근 분위기를 나타낸다. 특히 치마의 형태는 잘게 잡혀진 주름이 아래로 수직적인 분위기를 주며 허리띠의 색을 흰 것으로 하여 치마색을 돋보이게 한다.

치마는 폭이 넓어 우리나라의 온돌생활에 적합한 기능성이 있는 반면 뒷중심 여밈이 열리게 돼 있어 할동하기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기품있고 우아한 멋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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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 남녀 공용으로 겉에 입던 여자의 바지는 신라시대 이후로 오면서 속옷으로 변천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앞뒤트임형, 무족의형, 남자 바지형으로 분화하였다. 또한 바지와 치마의 중간형인 시군, 말군이 입혔으며, 임진왜란 이후로 바지는 여러 형의 속곳으로 분화하여 속속곳, 단속곳, 너른바지 등으로 남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입고 있는 하까마는 한복 중에서 여자 속옷인 앞뒤트임의 단속곳이 겉옷 바지로 입혀지는 예이다. 특히 남자의 바지형이 고정적인 데 비해 여자의 속바지는 몇개를 겹쳐입는 중복성 때문에 기능을 고려한 점이 있으며, 이는 용변의 편리를 위하여 밑을 완전히 트거나 바지통을 크게 하여 발을 뺄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속곳은 치마의 풍성함을 살리기 위하여 미적인 측면에서 이용되기도 했으며, 치마의 벌어진 사이로 속옷이 보여지는 점을 고려하여 무릎 아래 부분만을 곱게 누비거나, 윗쪽은 무명으로, 아래쪽은 명주로 하여 보이는 곳에 신경을 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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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층 여인들의 방한모로 사용된 처네는 같은 모양으로 크게 만들어 아기를 업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통영의 침선장 이정련씨가 재현한 이 누비로 만든 처네는 안쪽은 진홍색을, 바깥쪽은 더러움이 안타는 검은천으로 하여 가운데 솜을 두고 꼼꼼히 누볐다. 처네 바깥의 검은 천 위에는 벽사의 뜻이 있는 박쥐와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꽃을 다홍, 분홍, 초록, 노랑 등으로 화사하게 수놓았으며, 두 겹으로 접히는 처네 깃에는 흰색 동정을 달았다. 특히 아기를 업을 때 뒤에서 잘 보이도록 후수를 달았는데, 후수에는 다홍의 비단 위에 십장생 등 길한 문양들을 수놓고 가장자리에 오색으로 술을 달아 아름다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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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회장 저고리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변화한 독특한 저고리의 모습이다. 조선 중, 후기에 오면서 저고리의 형태에도 변화를 보여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으며 섶, 끝동, 동정도 좁아져 전체적으로 작아진 느낌이다.

황색 비단 저고리에 자주색 비단으로 곁막이, 끝동, 깃, 고름을 배색한 이 삼회장저고리는 조선시대 양반댁 규수들이 착용했던 전용물로서 삼회장 저고리와 함께 다홍색으로 염색한 치마의 강렬한 색대비가 아름다운 이 황의홍상은 결혼을 앞 둔 처녀들의 정장으로 단정하게 치장을 할 때 입었다. (한국자수박물관 소장) 

 

 

 

 

[코리아인사이트 기자 polyas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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