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믿는 종교

기사입력 2018.10.12 21:13 조회수 2,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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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온 민간신앙을 비롯하여 외래종교인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등 수없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의 다종교 상황은 한국문화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성격이자, 곧 한국인의 삶의 원형이다. 특히 넓은 뿌리와 역사를 가진 민간신앙은 무속, 마을제사, 가정신앙, 점복, 주술 등으로 폭넓게 전승되었으며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불교문화, 조선 5백년의 유교, 근대 이후의 기독교 등의 외래종교 안에도 민간신앙의 요소들이 잠복돼 있다.

또 민간신앙은 외래종교의 조직이나 교리등과 융합하여 동학이나 증산교와 같은 자생종교로 성장해 오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민간신앙 자체는 무속을 비롯한 판소리, 마을제사와 농악들 처럼 민속예술과 전통문화 보존의 뿌리를 이루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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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인간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비는 의식이다. 무당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인간의 소원을 신에게 고하고 신의 뜻을 인간에 전달해주는 중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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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당은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나 고갯마루에 수북히 쌓인 돌무더기로 그 옆에는 보통 신성시되는 나무나 장승이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 다니면서 돌이나 나무 또는 오색의 천 등을 올려놓으면서 개인의 소원이나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 

 

즉,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시는 당(堂)이다. 그러나 집을 따로 짓는 경우도 있으나 때로는 돌을 원뿔모양으로 쌓아 올리거나 그 옆에 서낭나무 또는 돌기둥이 서기도 하고 여기에 오색 천을 매단 새끼줄을 감기도 한다. 이 곳에 올려놓은 돌이나 나무, 천조각은 함부로 무너뜨리거나 자리를 옮겨 놓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어느 마을에나 서낭당을 중심으로 한 옛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어서 한국 민간신앙의 특징인 신성시되면서도 사람들과 친근한 마을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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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은 마을의 입구나 길가에 세운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든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을 위협하는 잡귀를 물리치고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며 때로는 개인적으로 소원을 기원하는 대상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또한 사찰의 입구나 지역간의 경계선에 서서 경계표와 이정표 등의 역할도 한다. 

전체는 기둥의 형태로 윗부분에 사람의 얼굴 형태를 소박하게 새기고 아래부분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등의 글씨를 새겨 남녀 한 쌍을 세운다. 왕방울 만한 눈은 부릅뜨고 코는 주먹코이며 귀까지 찢어진 입에는 송곳니를 드러낸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꾸밈없이 수수하고 자비로우며 친밀감을 주는 얼굴이 기도 하다.  이러한 장승은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신성시되어 함부로 만지거나 상하게 하면 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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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성기 모양을 본 떠 만든 모형이나 그를 닮은 형태를 숭배하는 민간신앙의 하나이다. 이러한 성기신앙의 역사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어 바위에 새긴 성기를 노출한 남자 그림이나 신라시대의 토우(土偶) 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후에도 돌이나 나무, 도토기(陶土器) 등으로 성기 모형을 만들거나 성기와 유사한 암석이나 지형 등의 자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에는 농사나 사냥, 고기잡이의 풍요가 절실하게 필요했으며, 또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마음은 성생활의 내면적 의의를 깨닫는데 도달하게 되어 성신앙을 사회적.문화적으로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상징하는 성기를 숭배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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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인 성격을 띤 국가행사로 그 시작은 신라 진흥왕 때(551년) 열리게 되었고 특히 고려시대에 성행하였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등(燈)과 향(香)을 올리는 것을 중요시하는데, 특히 등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이로써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라시대 이래로 전국적으로 여러 날에 걸쳐 이루어지던 연등회는 매우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불교를 억압하던 시대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연등회는 비록 규모는 축소되었으나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다. 

오늘날에도 부처님 오신날인 4월 초파일(음력 4월 8일)에 전국적으로 연등회가 이루어지고 있다. 각 절마다 불교신도들이 각기 자신의 등을 하나씩 들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시내에서는 각양각색의 연등을 들고 행진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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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파일에 절에서 승려가 염주를 들고 부처의 공덕을 노래하면서 탑을 돌면 신도들이 등에 붉을 밝혀 들고 그 뒤를 따라 돌면서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으로 시작되었으나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민속놀이의 하나로 변하였다.

따라서 처음에는 불교적인 음악을 연주하고 부처에 대한 칭송을 하다가 차츰 민요풍의 노래도 부르게 되고 개인의 소원을 빌게도 되었다. 또한 참여 인원도 늘어나서 큰 절에서는 수백 명이 참가하는 탑돌이의 장관을 볼 수 있다.

탑을 도는 순서와 방향에 따라 10가지로 구분되는데 비록 민속놀이지만 불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매우 경건한 형태를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쇠퇴되었다가 1970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재연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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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은 원래는 산천(山川)이나 묘사(廟社) 또는 학교에서 선현(先賢)을 추모하기 위하여 올리던 의식인데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에서 올리는 의식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매년 봄(음력 2월)과 가을(음력 8월) 두 차례에 걸쳐 문묘(文廟)에서 석전을 올린다. 의식에서는 음식을 차리고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을 연주하며 일무(佾舞)를 춘다.


rel_3g3s.jpg의식의 순서는 물론 참여하는 인원, 음식의 종류와 놓는 방법, 연주하는 음악과 춤 등에 대하여 그 절차와 격식이 엄격하고 까다롭게 정해져 있으며 의식은 매우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1986년 11월 1일에 성균관의 석전대제보존회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85호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도 해마다 봄, 가을에 석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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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_4g2s.jpg한국에 카톨릭이 전래되면서 처음에는 종교이기보다는 서양의 학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차츰 많은 사람들이 서학(西學)에 심취하게 되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온 주문모(周文謨)와 같은 선교사들의 전도에 의해 교세가 확장되었다.        

 
1784년에는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신앙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본격적인 교회가 창설되었다. 많은 박해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세는 더욱 확장되어 정약용의 형제인 정약전.정약종과 같은 학자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신도를 얻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발전한 천주교는 근대사회에 들어와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통해 국민들을 계몽하였고, 오늘날은 거의 200만에 가까운 신자를 가지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많은 학교와 병원 등을 세워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전도사업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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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카톨릭의 발전은 1969년 서울대교구 교구장 김수환(金壽煥)이 추기경에 서입되는 결실을 가져왔으며 한국에 카톨릭이 전래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인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한하여 기념집회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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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를 처음 들여온 것은 미국의 북장로교로, 1884년 의료선교사 알렌(Allen, H.N.)의 서울 도착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광혜원(廣惠院)을 열고 의료사업을 통해 선교의 문을 열었으며, 곧이어 북장로교의 언더우드와 북감리교의 아펜젤러 (Appenzeller,H.G.), 스크랜턴(Scranton,W.B.) 등이 도착하면서 이화학당 . 배재학당 등을 세워 교육을 통한 선교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초기 기독교회는 전통과의 이질성 때문에 심한 박해를 받았으나 활발한 반일운동을 계기로 민족교회로서 자리잡게 된다. 꾸준한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으로 민중의 눈을 뜨게 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교세를 확장하여 1984년에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였다.

현재는 세계 각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900만의 신도를 갖게 되었다. 이 사진은 영락교회로 1945년 한경직 목사에 의해 설립되어 각종 기독교선교운동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사업을 많이 전개하였고 현재는 약 6만 여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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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는 동학(東學)을 바탕으로 발전된 민족종교로 처음에는 기존의 정치체제를 개혁하고자 시작한 단체였으나 일부 세력이 친일화하자 정치적 관심을 포기하고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새로운 교리와 체제를 확립하고 본격적인 종교로서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국민들에게 사회교육을 실시하여 민족정신을 고취시킨 결과 3.1만세운동 때에 중심역할을 담당하였고, 잡지를 발간하는 등 근대적인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계몽에 힘썼다.
 
천도교의 기본정신은 인즉천(人卽天)으로 이는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깨달으면 그 몸이 곧 하늘이고 그 마음이 곧 하늘이므로 하늘을 모시는 것은 자기를 모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천도교의 중심교리는 하늘의 이치를 믿는 것이며 하늘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므로 결국 인간의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간지상주의를 표방한다.
 
천도교는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서 지상천국을 건설할 것을 주장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인격을 완성하여 윤리적 사회를 이룩하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여 세계의 신앙을 하나로 통일할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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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생종교의 하나로 1916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출신의 박중빈(朴重彬, 호는 소태산(少太山))에 의해 시작되었다.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교에 두고는 있으나 근본진리가 사상적으로 같을 뿐이고, 창교자인 소태산은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내세워 불교를 혁신하였다. 


모든 존재를 서로 가능하게 하는 힘과 법칙은 '은(恩)'으로 유지되는 것이며 이를 깨닫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 원불교의 신앙이다. 또한 끊임없이 정신을 수양하면 원만하고 거짓 없는 본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 마음을 활용하면 한없는 은혜와 위력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교리(敎理)는 원불교의 상징인 '○'으로 정리되었다. 여러 가지 공익사업을 행하는 가운데 건전한 종교로 성장한 원불교는 현재의 신도가 약 100만으로 추정되며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표어를 내걸고 내적으로는 실력을 쌓고 외적으로는 나라와 사회를 위해 힘써 일하는 종교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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