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우리 땅 이야기기사 백두대간 자락, 안반처럼 평평하고 큰(大) 마을, '안반데기'2021/03/21 험준한 백두대간 자락, 고루포기산(1238m) 남쪽 고산지대 해발 1100m에 위치해 있지만 떡매로 떡쌀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처럼 평평하게 생긴 큰(大) 마을이 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 4리 ‘안반데기’라는 마을이다. 현 행정지명인 대기리는 큰 터가 자리하고 있어 ‘한터’, 큰터’, ‘대기’라 했다. 대기리는 행정명 개편으로 상구정면이었으나 오늘날의 이름인 왕산면으로 개칭되면서 왕산면 관할이 되었고 최초 3개 리에서 안반데기가 개간되면서 화전민들이 이주하며 안반데기를 대기 4리로 편입시켰다. 안반데기 마을은 1965년부터 고루포기 능선에 화전민들이 산을 깎고 개간해 1995년 개간된 농지를 불하받으면서 완전히 정착해 오... 근심을 잊고 가는, 망우리(忘憂里)2020/11/25 망우리하면 공동묘지 고개라 알고 있지만 현재는 신흥주택가와 교육지구로 탈바꿈해 망우리공원으로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서울 둘레길 2코스'가 쉼과 문화가 있는 명소이다. 서울 둘레길2코스는 용마산과 아차산까지 이어지는 걷기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살기 좋은 동네이다. 공동묘지터가 된 것은 1933년 미아리의 공동묘지가 포화상태가 될 것을 예상하고 경기도양주군 망우리 고개를(228만3000㎡, 약 70만평) 신규로 공동묘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73년까지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망우리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며 숲과 산책로를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 寬仁坊의 인(仁), 대사동(大寺洞)의 사(寺)자를 조합한 인사동(仁寺洞)2020/10/30 인사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종로2가)에서 관훈동 136번지(안국동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로 안국동 사거리에서 장교(長橋)를 건너 청계천으로 갈 수 있었다. 인사동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지역에는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이 있었고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 이루어진 행정개혁 때는 대사동(大寺洞), 원동(園洞), 승동(承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있었다. 관인방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인사동이라는 동명이 붙여진 것이다. 대사동(댓절골)이라는 명... 춘천(春川)의 원래 지명은 ‘봄내’? 원래 이름은 ‘소머리’2020/09/23 춘천(春川)의 원래 지명은 ‘봄내’?, 봄내는 예로부터 내려온 순 우리말식 표기가 아닌 오늘날 기준으로 한자를 보고 역으로 뜻풀이를 한 것이다. 춘천의 정확한 원래 땅 이름은 ‘소머리’이다. 춘천의 우두산(牛頭山)을 소머리산, 쇠머리산, 솟을 모이, 솟을 뫼라고 부르는 이름의 뿌리에서 연유했다. 백두산을 머리산(頭嶽)이라고 불렀고 강화도 마니산을 머리산으로 부른 것도 동일하다. 이익의 ‘성호사설’ ‘천지문’(천문과 지리에 대해 정리)에 보면 춘천을 ‘금탕불발지형(金湯不拔之形, 공격하기 어렵고 무너뜨리기 어려운 상대를 지칭. 비슷한 의미로 철옹성)’으로 표시기했다. 지금의 제2 군단사령부가 있는 군사요충지로 과거에... 낙산 아래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정주공간, 창신동(昌信洞)2020/09/09 영조 27년(1751)에 ‘도성 삼군문 분계총록’에 보면 숭신방(성외) 밑에 숭신방계와 인창방(성외) 밑에 인창방계에 걸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조 13년(1789)에 간행된 ‘호구총수’를 보면 숭신방계가 숭신동계로, 인창방계가 인창동계로 바뀌어 있다. 갑오개혁(1894) 때 한성부 동서(東署) 숭신방(성외) 밑에 동문외계의 홍수동ㆍ복거교ㆍ남교ㆍ대정동ㆍ정자동ㆍ신리와 인창방(성외) 밑에 동문외계의 부정동ㆍ복거교 등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경기도령 제 3호에 의해 이 지역은 숭신면과 인창면이 되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 '부ㆍ군의 명칭ㆍ위치 및 관할구역의 개정'으로 경성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처음 1 2 3 4 5 6 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