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이성남의 문화잡기기사 송추(松楸) 가마골2020/07/28 송추 가마골? 양주 송추(楊州松楸)라는 그림이다. 서쪽 양주 고을 송추에는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 정선의 손자 정황(1737~19세기)이 바로 이곳 송추를 그렸는데 양주 송추이다. 얼핏 보면 빼어난 산수화로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희귀하고 기이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산줄기를 온통 채우고 있는 무덤 앞 비석들이 보이고 화폭 왼쪽에 도봉산 바위도 보인다. 노란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은 송추할 때 ‘추’(楸子木)인 가래나무이다. 옛부터 묘 주변에는 가래나무. 소나무를 식목했다. 해서 한식 추석 때 벌초 시기가 되면 인사말로 추행(楸行) 하셨습니까?라고 묻곤 했다. 조선시대 애체(靉靆)2020/07/10 조선시대 안경을 애체(靉靆)라 했다. 근대에는 안경 낀 사람들이 절반은 된다. 그럼 언제부터 안경에 대한 기록이 있었고 누가 최초로 안경을 쓰게 되었을까? '애체'라는 표기는 중국어 표기를 인용한 것으로서 국내 현존하는 안경중 가장 오래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통신사였던 김성일이다. 홍대용(1731~1783)이 중국에서 쓰고 들어와 유행 시켰다. 삐라의 어원 미군이 태평양 전쟁때 뿌린 빌(bill)2020/07/02 삐라가 처음 실시한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도망간 노예를 잡아 달라며 거리에 뿌린 문서를 세계 최초의 삐라로 친다. 이 파피루스 전단은 대영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종교 개혁이 한창이던 16세기 독일애서 위선적인 교황을 풍자하는 그림 전단이 곳곳에 뿌려졌다.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뿌려졌다.상대방의 귀순이나 항복하라는 삐라를 대대적으로 살포했다. 종로5가 약국들의 효시, 보령약국2020/06/22 서울미래유산으로 종로거리에 함께 명맥을 유지하던 종로서적.무과수제과.단성사 보신주단 등은 역사속으로 기억되고 종로 5가에서는 오래된 보령약국, 1958년에 개업했으니 60년이 넘었다. 북한산성 ‘숙종의 길’2020/06/09 대서문에서 시작해서 중성문, 행궁터, 동장대, 대동문을 다녀왔다. 숙종은 북한산성을 축조한 다음해 1712년 4월 10일, 훗날 영조가 되는 (영잉군 19세)과 함께 북한산으로 行幸(행행, 임금이 궁궐 밖으로 거동하는 일)하였다. 창덕궁에서 숭례문을 통해 홍제교 구파발을 걸쳐 북한산성 대서문으로 들어섰다. 숙종의 길은 평탄하다 때문에 숙종의 걱정은 현장에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內城인 중성문을 쌓도록 지시 한다. 중성문은 북한산성이 축조된 뒤 1714년에 완공된다. 그 옆 시구문, 수문은 중성문 옆에 만들었지만 을축년 대홍수 때 사라졌다. 처음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